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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말하는 믿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는 이유!
글쓴이 : 최고관… 날짜 : 2011-10-06 (목) 00:27 조회 : 1969

매우 귀한 글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구원이란 무엇인지,

우리가 날마다 구원을 이루어나간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또한 오늘날의 많은 한국 교회들이 말하는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 받는다"는 구원관 속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를

성경적으로 깨닫게 해주는 아주 귀한 글입니다.

내용이 길지만 끝까지 다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기독교 까페에 올렸던 글입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행위구원론자가 아니냐"

그리고 제 글에 이단사상을 얘기하셔서 쓴 답글입니다.

오늘날 잘못된 믿음에 관해서 구원관에 관해서

그리고 신앙인의 자세인 침노에 관해서 말하면

왜 그것이 이단사상이나 행위구원론이나

공로주의 같은 황당한 말들로 몰아가는지 모르겠습니다.

과연 성령이 아니면 누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보통 우편강도를 말하면서 믿음을 가지면 즉각적 구원의 완성이 되며

오직 믿음으로 즉각적이며 완성적 구원을 받는다 라고 말합니다.

말 그대로는 맞는 말입니다.

예수님과 만난 시간들을 본다면(상황적인 시간을 볼때 짧은 시간)

죽음 직전임에도 그에게 주님의 구원의 손길이 미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연히 주님을 향한 믿음이 없이는 그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우편강도의 대해서 간과해서는 안되는게 있습니다.

우편강도에게 동반된 것은

은혜와 더불어 진실한 회개였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우편강도에 대해서 아주 짧게 나와 있습니다.

배경적으로 또는 심정적으로 그에 대해서 알 수 있는 표현은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전체적으로 말하는 구원에 비추어 본다면

그리고 그 시대적인 상황을 고려해 보아도 충분히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편강도가 어떻게 그리고 무슨죄를 지었는지를 알 수 없지만

그가 죄를 짓고 감옥에 있으면서 자기내면의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있었던 시간이

십자가를 지기전에 감옥에서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유대인으로서 그 죄들을 하나님께 어떻게 빌어야 할지를...

깊이 고민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시대에 이스라엘에서는 예수님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당연히 없었을 것입니다.

(공생애 3년을 마치신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감옥 속에서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메시야, 구원자 라는 얘기를 들으면서

혹 나같은 죄인에게도 빌길을 주실까... 라는

참회의 마음 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바로 회개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빌길을 얻어야 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 마음만은 절실했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을 만났을 때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라며

나를 기억해 달라는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칠 수 있었던 것,

이런 진실한 회개의 준비 가 있었기에

예수님을 만났을 때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을 저주한 다른 강도와의 차이점이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 믿음은 자신의 죄를 깨달아 회개하고 빌길을 주시는

주님을 소중히 하며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 그 믿음입니다.

은혜는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이며,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구원의 수단이지만,

그 은혜 가운데서 늘 사람들의 마음을 살피시는 것 또한

하나님께서 늘 하시는 일이신 것입니다.

늘 중심을 보신다라고 성경은 계속 반복해서 말합니다.

긍흘히 여김받을 참 죄인의 심정 이라면 그 마음을 귀하게 보시는 것입니다.

전에 글에서도 말 한것처럼

믿음이라는 것이 "안다"" 인지한다""지적인 동의"를 믿음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닌 생각, 계산(믿어주어야 천국을 가니까)이며 종교심리인 것입니다.

계속 말하지만 믿음은 단순히 “안다“ 라는 개념이 절대 아닙니다.

믿음은 분명하면서도 전체적이며 포괄적입니다.

믿음은 삶이며 진정성의 증거이며 믿음은 결국 사랑인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을 현실화 시킬수 있는 아주 강력한 에너지입니다.

그리고 믿음은 믿음이기에 진정 주님을 믿기에 신앙의 과정을 이루어 나가서

장성한 분량까지 나아가는 것이 참 믿음이며 믿음의 실체입니다.

저는 율법적인 행위로 구원 받는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십일조, 각종헌금, 주일성수, 교회봉사를 한다고

그것 자체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행위도 아니며,

또한 그것이 믿음의 증거나 믿음 그 자체도 아닐 것입니다.

진실한 마음이 없다면 그저 습관과 의무감으로 한다면

그것은 가식이며 오히려 불의가 될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중심을 보시기에...

사람이 아무리 선량한 행위를 해도 구원에 이를수 없음을

저도 당연히... 매우 당연히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그 누가 구원에 이를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 그 믿음은 바로 시작이자, 기회이며

과정을 제대로 밟아나갔을 때의 결과로써 말 할수 있는 것입니다.

시작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결코 완성이 아닙니다.

복음을 듣는다는 것은 시작과 기회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씨뿌리는 비유(마13장)를 생각해 봅시다.

좋은 땅에 뿌리워진 씨는 100배, 60배, 30배의 결실을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길가, 돌밭, 가시떨기에 뿌려진 씨는 전혀 결실치 못했습니다.

그 씨를 가지고 말라비틀어져서 보일락 말락한 그 씨

(감동없는, 강팍한, 메마른, 습관적인, 은혜받았던 옛기억만 있는,

다른 영혼을 진정으로 사랑치 못하는)를 가지고

"오직 믿음(인지적)으로 구원받았다"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과연 주님의 마음이 어떠실까요?

믿음이 믿음이 되지 못한 그 얄팍한 심리로 말한다는게 가증스럽지 않을까요?

또한 성경에는

화있을찐저 외식하는 자들아,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도끼로 찍어서 불에 던진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을 향해서는

엄청나게 진노하시고 계속적으로 경고하셨습니다.

사랑의 주님이시니까 그저 마냥 봐줄거라는 것은

본인의 정적인기준이며, 본인의 기대심리일 뿐입니다.

바리새인은 무엇입니까?

마음의 감동없이 행동만 하는 종교주의자들이겠죠.

그런 모습이 말라비틀어진 씨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열매맺지 못하는 나무는 말라죽게 저주하시거나

도끼로 찍어서 불어던진다고 하셨습니다.

메마름으로... 앙상함으로... 말라 죽어가고 있는 나무가

오직 믿음(인지적)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아무리 앵무새처럼 반복해 보았자

그것이 무슨 믿음이며 무슨 구원이 그에게 해당되겠습니까?

여기서 히브리서에 나오는 말씀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히브리서4장1,2절)

복음이란 주님을 통해서 천국에 들어갈 약속을 받는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로마서를 살펴보면) 약간의 부연설명을 하자면

의인(로마서3장-의롭다 하심)이라 칭함을 받는 것은 의인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의인처럼 살도록 노력해라 라는 하나님의 주문인 것입니다.

말 그대로 칭함인 것입니다.

진행형으로 이해하시면 쉬울 것입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설명해 주는 미래에 대한 주문일 것입니다.

하나 더 살펴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로마서 10장 10절)

그래서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한다는 말씀 역시

마음으로 믿는다 라는게 사고적인“안다”가 아니라

마음이 움직여지는 감동입니다.

그러기에 또한 삶인 것입니다.

그리고 의에 이른다는 것은 실질적인 성화인 것입니다.

이런 부분들이 다 되어서 그것을 입으로 시인했을 때

비로소 그때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메마른 마음으로 성경구절만 말한다고 절대로 될 일이 아닌 것입니다.

위에 히브리서 말씀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천국에 갈 약속을 처음 은혜받았을 때

받는다해도 그것은 기회가 주어진 것이지 완성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짐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래서 위에 히브리서 말씀처럼

안식에 들어갈 약속을 받아도 못들어가는 경우가 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구절에 그 이유를 잘 설명해 줍니다.

천국에 못들어가는 그 이유가 복음을 들었지만

듣는 자의 믿음이 화합치 못했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화합지 못했다...

바로 우편강도가 화합한 믿음의 예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화합은 무엇입니까?

긍흘히 여김을 받을 죄인의 모습인 것입니다.

바로 '회개'의 모습입니다.

성경을 안다고 말하나 교회를 오래다녔다고 말하나

삶의 열매가 없고, 사랑의 열매가 없는데도,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전혀 화합치 못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라면 믿음을 화합한 모습인지 아닌지가 중요합니다.

"화합하지 못했다"라면 그것은 자신의 삶과 영혼에 너무나 비참한 일일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헛되이하는, 그 십자가를 삶으로 부인하는 삶일 것입니다.

정말 십자가를 믿는다면

그 참혹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모진 고문과 수치를 받으시면서 돌아가신 그 주님이

내 가슴에 처절하게 맺힌다면 어떻게 내 삶이 같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믿는다'라고 말하나 믿지 못하는 진정성 없는 모습인 것입니다.

천국을 믿는다 하나 강남아파트의 시세에 더 관심이 있다면

그것이 믿되 믿지 못하는 증거일 것입니다.

매달 통장으로 들어오는 월급통장을 더 믿고 신뢰하면서

오직 하나님만 믿는다고 말만하는 자신을 속이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재미있는 얘기 하나가 있습니다.

어느 신학대학원 교수님께서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학생들은 예수님을 믿는가?

바울을 믿는가?

학생들은 당연히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교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나를 믿으면 천국간다 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는데

왜 바울의 말을 믿냐고 얘기했다고 합니다.

이 얘기를 하는 것은 복음서가 바울서신서보다

더 성경적으로 권위가 있다 라는 얘기를 하려는게 아닙니다.

뼈있는 얘기라 생각해 볼 얘기라 적어본 것입니다.

생각해 볼 부분은 이런 것입니다.

하나는, 사도 바울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서

썼었던 간략한 표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물론 그 말씀들이 부족하다, 모자라다 라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바울과 제자들이 전한 "예수님을 믿으라" 라는 것은

그분의 십자가와 그분의 삶과 그분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라는 것으로

당연히 귀결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음으로 시작된다는 표현들인 것입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께서는

"나를 믿으면 천국간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물론 복음서에도 그런 맥략의

비슷한 구절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요한복음 3장16절)”

이 부분은 3장에 거듭남을 지나서 이 말씀의 단락(3장16-21절)에서

주님의 하시는 일, 심판을 주관하시는 일들이 나옵니다.

이런 부분들을 다 연결해서 보아야 그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권세를 지니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 십자가와 (당연히 저를 믿기에) 그의 말씀을 지키는 것일 것입니다.

성경을 볼 때는 늘 구절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단락과 장과 권과 전체를 보는 것이 문맥적으로도 바르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요한복음 14장6절)

주님의 길을 갈때 진리에 이르게 되며

진정한 예수님의 생명력이 그 안에 실제하며 운동력있게 움직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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