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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오해 !
글쓴이 : 최고관… 날짜 : 2011-10-07 (금) 11:56 조회 : 2136
 
율법의 참된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고 가르치는 분들이 희귀하여
신학적으로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신학 자체가 불완전하거나 무지한 사람들의 주장들이어서
수에 칠 가치가 없습니다.
성경의 계시는 절대적인 것이고 신학적인 해석이나 어떤 학자의 견해는
상대적인 것이니까 어떤 학자들의 말이라도 분별없이 수용해서는 안됩니다.
지금까지 기독교가 소홀히 하거나 등한시 해 왔던 율법에 대하여 올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성도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목회자들이나 신학자들까지도
율법이 주어진 동기와 목적, 더 나아가 율법의 기능과 유익을
거의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서 성도들은 혼란스럽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율법을 성취 하셨다" 말은 성경을 오해한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취하신 것은 율법을 성취하신 것이 아니라
구약성경에서 꾸준하게 예언되어 왔던 그 예언들이 성취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는 율법과 관계 된 것을 성취하신 것이 아니라 예언들이 성취된 것이요,
구약 즉 옛 언약에 내포된 약속들을 성취하셨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율법을 성취하셨으니까 지킬 필요가 없다"는 말은
아예 말이 되지도 않은 헛소리에 불과합니다.
둘째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성하셨다"는 말씀에 대한 오해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성하셨다"는 말은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성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말은 틀린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성하신 것은 폐하기 위하여 완성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예수님 혼자 지키려고 율법을 완성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율법은 모든 성도들이 그 율법을 지키라고 완성하신 것입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들이 이를 지킴으로써 세상 사람들과 구별(거룩)되게 하시려고
율법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사실 구약성경의 율법을 보면 그 수준이 낮은 수준입니다.
그 이유는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앙으로는
그 정도 수준의 율법도 지키지 못할 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에
구약의 율법이란 대체로 수준이 낮은 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께서 오셔서 율법의 낮은 수준과 미흡한 부분을
한 단계 더 끌어 올려서 완성을 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산상보훈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성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 ?
율법을 완성하셨다면 이제는 그 율법을 즐거워하고 사랑하고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복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면서 (시편 1편)
최선을 다하여 지키라고 완성하신 것입니다.
율법을 보는 안목이 열리신 분들에게는 율법이야말로
이 땅에서 복을 받을 수 있는 참으로 복된 길임을 보게 될 것입니다. (신28:1~14)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인들의 신앙은 사실 기독교가 아니라 기복교처럼 되어
어딜 가든지 그저 오나 가나 그저 복받는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신명기 28장에 나오는 그 많은 복들은 레위기에 기록된
여호와의 율례와 계명과 법도를 지킬 때에 받게 될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결론은 같습니다.
교통법규가 완성되었다면 성실히 교통법규를 지켜야 합니다. 
교통사고를 줄여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과 소중한 시간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주장하기를 교통법규가 완성되었으니까
이제는 교통법규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람들이 그런 사람을 정신에 이상이 있는 사람으로 여길 것입니다
자 먼저 예수님의 말씀부터 들어 봅시다 !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마 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 5: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요 10: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율법을 보완하여 완성시킨 것은 폐하기 위하여 완성하셨을까요 !?
폐하게 될 율법이라면 아예 완성할 것도 없이 폐하면 그만이었을 것입니다.
초대 교회 시대부터 율법무용론자(말키온 등)는 이단으로 정죄되었습니다.
종교개혁자들 시대에도 율법 무용론자들도 이단으로 정죄되었습니다.

자 그러면 어떻게 생각해야 옳은 것일까요 ?

여기서 우리가 좀 더 성실하게 율법에 대하여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스스로 오해에 휘말려 착각하게 된 것은
바울의 서신들을 오해하게 됨으로써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 즉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들어가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들어가기 위해서
율법을 다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거기에는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믿음으로써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들어간 후(後)의 이야기입니다.
율법이란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들어가기 전에 지켜야 하는 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그 후에 지키라고 주신 것임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율법을 논하는 사람들은 율법이 처음부터 구원 이전의 문제가 아니라
구원 받은 사람들에게 구원받는 거룩한 백성답게 사는 원리로써
율법이 주어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이란 구원받기 위하여 신앙생활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값없이, 은혜로, 구원받은 후에 그 구원 받은 감격으로
거룩하게 살아서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 길이 율례와 법도와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삶이 전혀 거룩하지도 않고 선하지도 않고 구별도 되지 않는 것은
그동안 신학자 목회자 성도들 모두고 율법을 무시하고 기복주의와 신비주의적인 미신으로
성도들의 삶이 타락하고 변질되었기 때문에 세상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율법은 처음부터 그렇게 주어졌던 것입니다.
그 율법이 주어졌던 시점이 애굽에 있을 때가 아니라 애굽에서 믿음으로
은혜로 구원받은 후에 시내산까지 와서 주어졌다는 것을 주목해야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있을 때 율법을 주시면서
"만약 너희가 이 율법을 지키면 애굽에서 구원하여 주리라!"하신 것이 아니고
그냥 유월절 양의 피를 문 인방과 설주에 바르고 그 양의 고기를 먹고
모세가 전한 말씀을 믿음으로 그냥 값없이 구원을 받아 나온 것입니다.
애굽에서 이미 구원받은 백성들에게 구원받은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어떻게 살면 거룩하게 되는지를 규정하고 가르치는 율법이 주어졌습니다.
율법의 기능을 단지 죄를 깨닫게 하였다는 것은
사도 바울의 "결과론적인 해석"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결과론적으로만 보지 말고 그 율법을 주셨던 원래의 목적, 
즉 먼저 그 율법을 주셨던 처음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주셨던 처음의 목적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첫   째, 율법의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룩하게 하는데 있습니다.
둘   째, 율법의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복되게 하는데 있었습니다.
셋   째, 율법의 목적은 삶을 얻고 복을 얻게 하는 본된 언약이었습니다.
넷   째, 율법의 목적은 거룩하게 살아서 선교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섯째, 율법의 목적은 생명과 평강이 보장되는 복된 언약이었습니다.
여섯째, 율법의 목적은 하나님 경외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일곱째, 율법의 목적은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말씀은 오경을 제대로 읽으면 그냥 훤히 보이는 내용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최소한 7년마다 한번씩
성경을 통독하면서 가르쳐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게 하라 하시는 말씀을 소홀히 하여
율법을 전혀 지키지 못했고 따라서 결과론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룩하게 되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복되게 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삶을 얻고 복을 얻게 하지도 못했습니다.
선교는 고사하고 오히려 선교당하고 말았습니다.
생명과 평강은 고사하고 고통과 사망을 겪었습니다.
하나님 경외하는 것을 배울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독사의 자식들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말한 대로 그렇게 된 율법을 결과론적으로만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악하고 얼마나 어리석으며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깨닫게 되었고 따라서 스스로 큰 죄인됨을 깨닫고
"우리가 어찌할꼬"할 때 구세주 예수님께서 오셔서 죄인들을 부르셨으니
오히려 그 율법이 죄인들의 죄인됨을 깨닫게 하는 것이 되었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이 단지 죄를 깨닫게 하는 기능만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구약시대에 거룩한 사람들은 율법을 즐거워하면서 지켰습니다.
성경은 그러한 사람들을 성경은 언제나 의인으로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시대 즉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한 사람들을 의인으로 부르시는 것이
잘 못된 것이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율법이라는 언약을 맺을 때 그 언약을 지키면 복을 받을 것이고
만약 배반하여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 것으로 언약이 체결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율법을 보고 하나님을 믿었다면
복을 받고싶은 마음에서라도 율법을 지키려 했을 것이고
반대로 저주 받을 것이 두려워서라도 율법을 지키려고 했을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라면
복 받을 것을 믿으면서 지킬 것이고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 것으로 믿어
두렵고 떨림으로 율법을 지키려 할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
율법을 지킨다 해도 복 주실 것 같지도 않고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저주같은 것은 받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러한 사람을 우리는 불신자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원리는 그 때나 지금이마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이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느냐 하면
그것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이 의롭다 함을 받고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은
전혀 사람의 행위에 달린 것도 아니고 율법을 지켜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은 후에는 성실히 율법을 가르쳐서
배우게 하고 지키게 해야  성도들의 삶이 거룩해지고 복을 받게 됩니다. 

율법의 정신을 요약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며
우리가 건전하고 건강하게 위생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어
거룩하게 되고 복된 삶을 살아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우리가 지켜야 하는 율법은
구약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키던 수준의
불완전한 율법이 아니라 거기에 예수님의 교훈 즉
더 완전케 하셔서 완성시키신 완전한 율법을 가르치고 지켜서
우리의 삶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온전하심같이
성도들의 삶이 온전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바램이고 교훈이고 명령입니다.
(마 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5:46-48)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者)를 사랑하면
무슨 상(賞)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兄弟)에게만 문안(問安)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異邦人)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穩全;perfect)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穩全;perfectly)하라
그러나 구약의 여러 율법서 중에서 폐하신 율법이 있기도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많은 목사님들이 바르게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폐해진 율법과 폐하지 않은 율법은 간단하게 구별할 수 있습니다.
첫째, 모형(Symbol)으로 혹은 형상(Image)으로 지키던 율법은
        실상(Real image)이 오게 되면 폐지하는 것입니다.
가령 예를 들자면 동물들 즉 양이나 소나 염소로써 드리던 제사는
폐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모형으로 드리던 것인데 실상으로써
예수님께서 희생하신 후에는 영원히 폐하게 되었습니다.
육체에 행하던 싸인 즉 할례의 경우는 마음의 할례 즉 세례가 오니까
폐해진 것입니다. 그 외 유대지방의 문화 안에서 임시로 주어졌던
관습법들 중에 수혼법이라든지 기타 몇 가지는 폐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폐하지 않는 율법이 있습니다.
윤리와 도덕적인 율법은 모형이 아니라 실제적 삶의 윤리이기 때문에
영원히 폐하지 않는 것입니다.
음식물 규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약 시대 유대인들이 음식을 먹는 것은 모형으로 먹은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건강과 위생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율법이기 때문에
역시 사람이 육체를 가지고 사는 모든 날 동안 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오늘날 유대교 신자들과 몰몬교 신자들과 안식교 신자들이
우리 기독교인들보다 건강하게 사는 것을 보시면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실제로 무시하거나 폐하신 것은 율법 자체가 아니라
그 율법의 정신을 벗어난 미드라쉬 탈무드나 미쉬나 게마라 토셒타 학가다 등
과잉해석 되어 율법의 정신을 크게 훼손한 유대교 장로들의 유전을
무시하셨고 지키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어설픈 학자들이 율법무용론자처럼 가르쳐 온 것은
구약도 신약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잘 못 가르쳐 온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에서 이렇게 주장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크게 혼란스러워할 것은 자명한 노릇입니다.
그만큼 우리 목회자들이 성경을 바르게 배우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글을 몇 차례 더 정밀하게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마 7:24-27)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行)하는 자(者)는
그 집을 반석(磐石) 위에 지은 지혜(智慧)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柱礎)를 반석(磐石)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行)치 아니하는 자(者)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율법을 가르치지 않고 성화의 과정을 무시하고 방자하게 나아가던
저 유럽의 교회들이 다 무너져 버렸습니다.
산상보훈이란 불신자를 위하여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 성도들, 즉
예수님을 주와 구주로 믿는 사람들을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신앙과 생활이 산상보훈을 지키지 않으면 윤리적인 삶이
근본부터 흔들리게 되고 레위기에 있는 음식물 규정을 무시한 결과는
오늘날 성도들의 건강이 급속히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하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사랑하기를 제몸 같이 하고 있다면 율법 중에 최고의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삶의 자세는 그 인격의 윤리적인 측면에서 건전한 것이지만
육체적인 건강을 위해서는 음식물 규정과 위생법을 지키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길입니다.
 
이 주제는 오늘날 대부분의 목회자 혹은 신학자들이
바르게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 솔직한 현실입니다.

율법을 성실하게 지키는 유대교 신자들과 안식일 교회 신자들 그리고
몰몬교 신자들의 삶은 확식히 세상 사람들보다 거룩하고 경건합니다.
반면에 우리 기독교인들이 생활은 어디서도 경건한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옛날에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다고 책망을 하셨는데
오늘날에 와서는 경건의 모양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모형으로 제정된 율법은 실상이 오면 당연히 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형적인 율법이 아니라 실제로 행할 것을 규정한 율법은
영원히 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시면 스스로 분별할 수 있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15장의 문제는 할례를 강요하지 말것을 결의하면서 부과하여 피와 목매어 죽인 동물들의 고기와 음행을 멀리하라고 결정한 것일 뿐 율법전체를 폐한다는 결의가 아니었습니다.
초대교회로부터 지금까지 율법폐지론자들은 한결같이 이단으로 정죄되어 왔습니다.

돼지고기나 개고기 등은 먹어서 좋을 것이 하나도 없는 음식들입니다. 작금의 기독교세계에만 현저하게 증가하는 각종 암들과 고지혈증과 지방간, 간경화 등은 이러한 음식들과 역학적인 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각종 계들과 조개들과 비늘없는 물고기들이 환경호르몬이 가장 많이 오염되어 있는 음식들이라는 사실도 속속히 밝혀지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먹을 수 있는 것으로 규정된 것들 중에 오늘날에는 먹어서는 안되는 것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비늘이 있고 지느러미가 있는 생선들이라도 항셍물질 가득한 사료를 가지고 가두리양식장에서 인공으로 양식한 각종 활어들은 우리가 마음놓고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작금에 슈퍼 박테리아에 대한 기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도 이와 맥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견뎌야하는 통닭용 육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동물성 단백질은 식물성(채소, 곡식, 과일)을 먹어서 만들어진 단백질에 비하여 질이 떨어지는 것임을 알고나면 고기를 탐식하는 우를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의 먹을 수 있다고 하는 동물들이라도 부위에 따라서 먹을 수 없는 부위가 있다고 가르치고 있는데 이를 연구해 보시면 이 모든 규정이 우리의 건강을 위한 사랑의 말씀임을 확인하시게 될 것입니다.

안식일 문제는 유대인들처럼 지킬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사람마나 엿새 일하고 하루를 쉬는 것은 생체 리듬을 비롯하여
삶의 질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이라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유월절은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로서 완성된 절기를 우리가 지금까지 지키고 있습니다.
오순절은 칠칠절이라고도 하는데 성령님의 강림절로 우리도 지키고 있습니다.
초막절은 다른 말로는 장막절, 혹은 수장절로 불리어지는데 추수 감사절도 지키고 있습니다.
나팔절은 새 해가 시작됨을 알리는 절기인데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나팔절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교 분리가 되면서 민형사상의 율법들은 교회에서 정부로 이양되어서 지켜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양 된 율법은 성경보다 더 강화되어 지켜지고 있습니다.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으시면 위에 제가 쓴 글을 몇 차례 더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안되면 에스라성경강좌에 풀코스를 직접 참석하셔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강의를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음식물을 가리지 않아도 저주가 구원를 받지 못하거나 저주가 임하거나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이서 가려서 먹도록 규정하신 음식물 규정을 무시하고 아무 고기나 다 먹고 피를 마시고 동물을 지방질을 마구잡이로 먹어 온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정에서는 이이 혈액이 탁해지고 오염되어서 인재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반면에 음식을 가려서 먹을 줄하는 유대교와 몰몬교도들과 안식일교회 사람들은 우리 기독교인들보다 머리가 명석하여 과학자는 물론 걸출한 인물들이 계속배출되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인정하기 싫어하는 유대교에서는 이렇게 걸출한 인물들을 배출하여 온 세계를 쥐락펴락하고 있는데 어찌해서 우리 기독교에서는 저런 인물들을 길러내지 못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첫째, 인물과 인재를 길러 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음식을 가려서
        피가 맑아야 하고 유전자를 치료해야 합니다.

둘째, 가정 교육, 학교 교육, 교회 교육, 사회 교육 등 교육이 달라져야 합니다.
        성경과 역사와 과학을 가르쳐서 철학이 있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셋째, 환경을 치료하고 보존해야 합니다. 개인이 아무리 노력하려 해도 환경이 잘 못되면
        건강하고 건전한 인물을 길러내기 어렵게 됩니다.

넷째, 기도가 달라져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공부하는 것을 기도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화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것을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아버지께 헌신하고
          복종하는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우리 기독교는 거의 공부도 안하고 노력도 없이 미신적으로 졸라대는 것을
        기도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도들을 지도하는 목회자, 선교사, 전도사, 교사 등 교회를 섬기는 모든 분들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은 세상을 이기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길러내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인물을 길러내지 못하면 교회의 미래는 희망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인들과 과학자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몰몬교인들로 구정되어 있습니다. 예술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 대통령 취임식이 등장하는 그 유명한 성가대는 기독교 성가대가 아니라 모르몬 태버니클 콰이어였습니다.

2002년도 SBS 방송국에서 방영한 [잘 먹고 잘사는 법]이라는 프로그램이 3부작으로 제작되어 나갔습니다. 그 때 조사한바에 의하면 한국의 초증고생들의 혈액혈청검사를 해서 결과를 보고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삼육하원의 학생들이 피가 가장깨끗하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는대로는 삼육하원 학생들이의 세계에서는 학원폭결과 같은 비극이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의 학교 폭력들과 미국의 총기난사사건들도 음식과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반면에 한국의 지성인들이 추앙해 마지 않는 걸출한 인물들이 거의 다 유대교인들입니다.

1.    칼 맑스, 공산주의를 만들어 낸 사람

2.    에이브럼 노암 촘스키,  미국 의 언어학자, 철학자, 정치운동가, 아나키스트, 저술가 이자 진보적 교수 이다. 현재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MIT 의 언어학과 교수이다. 촘스키는 변형생성문법 이론을 만들어낸 학자로 유명하여 20세기에 가장 중요한 공헌을 한 언어학자로 존경받고 있다

3.  알버트 아인슈타인, 상대성 이론과 원자탄의 원리를 발명한 사람

4.    헤르베르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 1898년 ~1979년 )는 독일 태생의 사회철학자 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미국 으로 건너갔다. 프롬 과 함께 정신분석 과 사회학 의 공동연구서 『권위와 가족』을 저술하였다

5.    루카치 죄르지(Lukacs Gyorgy, 1885년 4월 13일 ~1971년 6월 4일 )는 현대를 대표하는 헝가리 의 문예 사상가이자 마르크스주의 사상가이다. 삶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 에서 은행 중역의 아들로 태어났다.

6.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 CH , 1917년 6월 9일 ~ )은 영국 의 맑스주의 역사가다. 영국 공산당 당원이자, 공산당 역사가 그룹 의 회원이다. 현재 런던 대학교 버크벡 칼리지 (Birkbeck College)의 학장이다.

7.    칼 레이먼드 포퍼(Karl Raimund Popper, 1902년 7월 28일 ~ 1994년 9월 17일)는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영국 철학자[1]로, 런던 정치경제대학(LSE)의 교수를 역임하였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었던 과학 철학자로 꼽히고 있으며, 과학 철학 뿐 아니라 사회 및 정치 철학 분야에서도 많은 저술을 남겼다. 고전적인 관찰-귀납의 과학 방법론을 거부하고, 과학자가 개별적으로 제시한 가설을 경험적인 증거가 결정적으로 반증하는 방법을 통해 과학이 발전함을 주장 하였다.

8.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 1891년 1월 22일 ~ 1937년 4월 27일)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그리고 반 파시즘을 주장한 이탈리아 지식인, 정치인 그리고 지도자와 사상가였다. 그는 이탈리아 공산당의 창설자 중 한 명이며 한 때 지도자이기도 하였으며, 무솔리니 파시스트 정권에서 투옥되었다. 그는 문화 및 정치적 리더십을 분석하였고 자본주의 사회의 국가를 비판하는 문화적 헤게모니 개념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9.    에리히 핀카스 프롬(Erich Pinchas Fromm, 1900년 3월 23일 ~ 1980년 3월 18일)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태인 독일계 미국인 사회심리학자이면서 정신분석학자, 인문주의 철학자이다. 비판이론 영역의 프랑크푸르트 학파에서 활동하였다

10.  존 폰 노이만(Johann von Neumann 요한 폰 노이만), 1903년 12월 28일 - 1957년 2월 8일)은 헝가리 출신 미국인 수학자이다. 무신론자였으나, 나중에 로마 가톨릭 교회 신자가 되었다. 양자 역학, 함수 해석학, 집합론, 위상수학, 컴퓨터 과학, 수치해석, 경제학, 통계학 등 여러 학문 분야에 걸쳐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특히 작용소 이론을 양자역학에 접목시켰고, 맨해튼 계획과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 참여하였으며, 게임 이론과 셀 자동기계의 개념을 공동 개발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11.  발터 베냐민(Walter Bendix Schonflies Benjamin, 1892년 7월 15일 ~ 1940년 9월 27일)은 유대계 독일인으로 마르크스주의자이자 문학평론가이며 철학자이다. 그는 게르숌 숄렘의 유대교 신비주의와 베르톨트 브레히트로부터 마르크시즘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또한 비판이론의 프랑크푸르트 학파와도 관련이 있다.

12.  자크 마리 에밀 라캉(프랑스어: Jacques-Marie-Emile Lacan, 1901년 4월 9일 ~ 1981년 9월 9일)은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대한 해석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한편, 과학자들은 라캉을 비판하는데, 대표적인 예로 앨런 소칼과 리처드 도킨스가 있다. 도킨스는 라캉을 두고 “라캉이 사기꾼인 것을 납득시키기 위해 굳이 전문가의 의견을 들이댈 필요도 없다”고 평가했다

13.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klod levi st?os], 1908년 11월 28일 ~ 2009년 10월 31일)는 프랑스의 인류학자로, 인간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 방법으로서 구조주의를 개척하고 문화상대주의를 발전시킨 사람으로 유명하다.그는 슬픈 열대에서 문화는 나라마다 다르긴해도 더 우월하거나 열등하고 야만적인 문화는 없다고 단언함으로써,서구중심주의와 인종주의 그리고 서구의 오만과 편견을 깨는데 크게 기여했다.그는 원주민의 과거 식인풍습조차도 종교적 차원의 문화 현상으로 함부로 나쁘다고 매도할 수없다고 했고 오히려 서구 근대 문명의 대규모 학살과 전쟁으로 빚어진 야만성과 잔인성을 신랄히 비난했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유태인계 프랑스인으로 태어나 파리 대학 법학부 문학부를 졸업하였다. 1934년 브라질 상파울루 대학 사회학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958년 프랑스 콜레즈 드 프랑스 인류학과 정교수가 되었다. 2009년 100세의 나이로 파리에서 사망했다.

14.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년 7월 15일 엘 비아르~2004년 10월 9일 파리)는 알제리 태생의 프랑스 철학자이다. 철학뿐 아니라 문학, 회화, 정신분석학 등 문화 전반에 관한 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특히 현대철학에 해체의 개념을 도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15.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 1926년 10월 15일 ~ 1984년 6월 26일)는 프랑스의 철학자이다. 그는 콜레즈 드 프랑스에 교수로 있을 때 '사상사'(The History of Systems of Thought)를 가르쳤는데, 이 과목의 이름은 그가 직접 붙인 것이다. 그의 글은 인문학, 사회과학의 많은 영역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푸코는 다양한 사회적 기구에 대한 비판, 특히 정신의학, 의학, 감옥의 체계에 대한 비판과 성의 역사에 대한 사상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또한 권력과 지식의 관계에 대한 이론들과 서양의 지식의 역사에 관한 '담론'을 다루는 그의 사상은 많은 토론을 불러일으켰다. 현재의 비평가들은 그의 작업을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후기 구조주의의 관점에서 기술하는 데 반해, 1960년대에는 그를 구조주의와 연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초기의 푸코는 이런 설명에 불만이 없었으나, 나중에는 구조주의자들의 접근 방식과 자신의 방식과의 차이를 강조했다. 자신의 작업에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설명이 붙는 것도 환영하지 않았으며, 자신은 어떻게 '근대성(modernity)'이 정의되는지에 관심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16.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년 5월 6일 ~ 1939년 9월 23일)는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파의 창시자이다. 프로이트는 무의식과 억압의 방어 기제에 대한 이론, 그리고 환자와 정신분석자의 대화를 통하여 정신 병리를 치료하는 정신분석학적 임상 치료 방식을 창안한 것으로 매우 유명하다. 또 그는 성욕을 인간 생활에서 주요한 동기 부여의 에너지로 새로이 정의하였으며, 자유 연상, 치료 관계에서 감정 전이의 이론, 그리고 꿈을 통해 무의식적 욕구를 관찰하는 등 치료 기법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리고 프로이트는 뇌성마비를 연구한 초기 신경병 학자이기도 하였다.

17.  앙리루이 베르그송(Henri-Louis Bergson, 1859년 10월 18일 ~ 1941년 1월 4일)은 프랑스의 철학자이다. 한국에는 흔히 베르그송이라는 프랑스식 발음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것은 그가 폴란드계 사람임을 모르고 전해진 표기이다. 실제 프랑스에서는 폴란드계임을 감안하여 '베륵손'이라고 부른다고 한다.그는 한 마디로 말해 천재였다. 프랑스의 전국 학력경시대회에서 라틴어 작문, 영어, 기하학, 불작문, 수학에서 1등을 차지하였으며, 그 외 과목도 3등, 4등을 차지하는 등 전과목에 뛰어났다. 1877년 수학 경시대회에서 제시된 그의 <빠스칼의 '세 개의 원'에 대한 해법>은 다음 해 수학 연감(Nouvelles annales mathematiques)에 실렸다고 한다. 이처럼 그는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나 라슐리에의 ≪귀납의 기초에 관하여≫를 읽고 철학으로 진로를 정한다.

18.  밀턴 프리드먼 (영어: Milton Friedman, 1912년 7월 31일 ~ 2006년 11월 16일)은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대중적인 지식인이다. 자유주의 시장경제 옹호자로 거시경제학을 위시하여 미시경제학, 경제사, 경제통계학에 큰 기여를 하였다. 1976년에 소비분석, 통화의 이론과 역사 그리고 안정화 정책의 복잡성에 관한 논증 등의 업적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였다. 프리드먼은 케인즈와 더불어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경제학자로 여겨진다. 《자본주의와 자유》(1962)에서, 그는 정치적·사회적 자유의 창조의 수단으로 자유시장 내 정부가 맡는 역할이 축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텔레비전 시리즈인 《선택의 자유》(Free to Choose, 1980년대 PBS 방송국에서 방영)에서 프리드먼은 자유시장이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설명하고 여타의 체제에서 풀지 못한 정치적·사회적 문제의 해결할 수 있는 자유시장의 작동원리를 강조하였다. 나중에 이 시리즈의 내용은 그의 아내 로즈 프리드먼와 공동저자로 책으로도 출판되었다. 이 책은 사람들에게 널리 읽혀졌고 뉴스위크에 칼럼으로도 실렸다.

19.  임매뉴얼 M. 월러스틴(Immanuel Maurice Wallerstein)세계체제론(世界體制論, World System Theory) 또는 세계체제이론은 세계를 하나의 사회체제로 파악하여 중심부와 주변부의 비대칭적 관계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1970년대 중반 뉴욕주립대학 교수인 임매뉴얼 M. 월러스틴(Immanuel Maurice Wallerstein)이 주창하였다.

20.  마이클 호로위츠, 그는 미국에 교수가 617,000명이 있는데, 그 중 25,000 ~ 30,000명이 좌파라고 평가했다. 그는 개인을 총체적으로 판단하는 기법을 이용해서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101명의 좌파 교수를 선정해서 이 책에 담았다. 전공과 무관하게 과격한 정치적 선전을 하는 교수, 교실에서 정치적 토의를 하는 교수, 유대인 기독교인 및 백인에 대해 공공연하게 차별적 언동을 하는 교수들이 포함되어 있다. 호로위츠가 선정한 좌파 교수들을 선정하고 폭로하는 책을 썼다.

21.  아인 랜드(Ayn Rand, 1905년 2월 2일 - 1982년 3월 6일)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태생의 유대인인 미국의 소설가, 작가, 철학자이다.

22.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년 10월 14일 ~ 1975년 12월 4일)는 독일 출신의 정치 이론가이다. 종종 철학자로 평가되지만, 아렌트 자신은 항상 철학은 "단독자인 인간"에 관심을 갖는다는 이유로 그러한 호칭을 거절했다. 그는 대신에 자신을 정치 이론가로 묘사했는데, 그 이유는 그의 업적이 "'한 인간'이 아닌 '인류'가 지구에 살며 세계에 거주한다."는 사실에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23.  수잔 손택(Susan Sontag)그녀는 예술에 대한 사랑을 분석가나 연구자로서가 아니라, 한 명의 감상자 혹은 숭배자로서 감추지 않는다. 예술작품을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마치 애인에 대한 욕망과 관능으로 이해하겠다는 태도이다. 그녀는 이를 예술의 "성애학"(erotics)이라고 부르고 싶어했다. 프랑스인 글쟁이 바르뜨(Roland Barthes)의 예술론의 한 측면인 감각주의와 뉴욕 예술계 특유의 냉소적 분위기가 뒤섞여 (적잖이 속물스러운) 변용을 일으키는 것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예술작품뿐만 아니라 경험에 있어서의 관능성의 회복, 이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어떤 점에서 볼 때, 그녀가 주장했던 전체 논지는 현대의 복제 산업이 만들어 놓은 불감증에서 느껴지는 불쾌감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24.  마르틴 부버(Martin Buber, 1878년~1965년)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계 종교철학자이다. 유대인 히브리 고전학자 솔로몬 부버의 손자이다. 빈에서 태어나 빈, 취리히, 베를린 등지의 대학에서 철학과 미학을 배웠다(1896~1900). 프랑크푸르트 대학에 초빙되어 종교철학·윤리학을 강의했다(1923-1933). 나치의 유대인 박해로 독일에서 피난하여(1923), 여러 나라에서 망명생활을 보내고, 1938년 부흥된 이스라엘 공화국의 히브리 대학에서 사회철학 교수가 되었다. '나와 너'의 관계를 기조로 한 인격주의적 철학은 실존주의와 함께 제1차 대전 후의 유럽, 미국의 그리스도교적 신학이나 철학, 또한 정신의학계에까지 넓고 깊은 영향을 끼쳤다. 또한 로젠츠바이크와 함께 구약성서의 새로운 독일어역을 시도하기도 하고, 하시디즘(신비주의적 유대교의 운동)에 깊이 참여하여 추진자가 되었으며, 유대교의 현대적 우위를 명백히 하는 데 큰 공헌을 남겼다. 잡지 <유대인>(1916-24) 및 <피조물>(1926- )을 편집, 발행하였다.

25.  바루크 스피노자(네덜란드어: Baruch Spinoza, 1632년 11월 25일 - 1677년 2월 21일)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난 포르투갈계 유대인 혈통의 철학자이다. 스피노자가 쓴 저작의 과학적 태도와 포괄성, 중요성은 스피노자 사후 오랜 세월동안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오른날 스피노자는 18세기 계몽주의와 근대 성서 비판의 토대를 놓은 유럽 17세기 철학의 합리주의자 세 거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대작 《에티카》에서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정신-육체 이원론에 반대하였으며 서양 철학에서 중요한 철학자로 손꼽힌다.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은 모든 근대 철학자에 대해 "당신은 스피노자주의자거나 아예 철학자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하였다.스피노자는 네덜란드의 유대인 집단에서 활동하였고, 유대 저작에 대해 정통하였으나 논쟁적인 사상 때문에 유대인 지도자들은 스피노자에게 제명 조치를 취하여, 당시 23살이던 스피노자는 사실상 유대 사회에서 쫓겨난다. 또 스피노자의 모든 저작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금서 목록(Index Librorum Prohibitorum)에 올랐다

26.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Steinem 1934. 3. 25 미국 오하이오 톨레도) 미국의 여성운동가 정치운동가 편집인 20세기 후반 여성해방운동을 이끌어온 활동가이다. 1956년 스미스대학을 졸업했으며, 인도에서 공부하는 동안 자유기고가로서 신문에 글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60년 뉴욕 시에서 작가이자 언론인으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1960년대 후반 여성해방운동과 다른 여러 자유주의 급진운동에 깊이 참여했다. 1971년 여성의 정계진출을 추구하는 전국여성정치간부회의 창설에 참여했으며, 1972년 여성운동의 관점에서 현대의 여러 문제를 다루는 유행잡지인 〈미즈 Ms.〉를 창간하여 편집인을 지냈다. 1970~80년대 여러 여성정치운동단체를 창설했다. 1983년 평론과 잡지 기사를 모은 〈성난 행동과 매일의 반란 Outrageous Acts and Everyday Rebellions〉을 출판했다.

27.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 1943년 1월 26일~ )은 워싱턴 경제동향연구재단(Foundation on Economic Trends (FOET))의 설립자이자 이사장으로서 미국 및 국제적 공공 정책 수립에 영향을 미쳤다. 콜로라도 주 덴버에서 태어났다. 그는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넘나들며 자본주의 체제 및 인간의 생활방식, 현대 과학기술의 폐해 등을 날카롭게 비판해온 세계적인 행동주의 철학자이다. 전 세계 지도층 인사들과 정부 관료들의 자문역을 맡고 있으며 과학 기술의 변화가 경제, 노동, 사회,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활발히 집필 작업을 해 왔다. 한국에서는 《엔트로피》, 《종말》 시리즈로 널리 알려져 있다

28.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 1928년 10월 3일 ~)는 미국 뉴욕 태생의 미국의 작가이자 미래학자로, 디지털 혁명, 통신 혁명, 사회 혁명, 기업 혁명과 기술적 특이성 등에 대한 저작으로 유명하다. 뉴욕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였으며 이후에는 미국 중서부 지방에서 5년간 노동자로 산업사회의 대량생산의 현장에서 일해본 경험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한편 그의 아내인 하이디 토플러는 대학시절 언어학을 전공하는 학생일 때 만나게 되었으며 이후 중서부지방에서 토플러가 노동자로 일하는 동안 그녀는 알루미늄 공장에서 일하면서 노동조합의 간사로 일하기도 하였다. 이때 노조의 지원을 받는 신문에서 일하게 되었으며 이후 펜실바이아 데일리지의 워싱턴 지국에서 일하게 되면서 3년 동안 미국 의회와 백악관 출입 기자를 하게 되었다. 이후 뉴욕으로 돌아와서 포춘(Fortune)지의 노동관계 컬럼니스트로 일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경제와 경영 그리고 기술과 기술에 의한 영향에 대한 관심사를 넓혀갔으며 이에 대한 저술이 시작되었다. 이후 그의 관심은 사회의 변혁에 대한 반응을 조사하는 것으로 이어졌으며 21세기 군사 무기와 기술의 발달에 의한 힘의 증가와 자본주의의 발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활동했다. 포춘을 떠나게 되면서 IBM사의 의뢰로 사회와 조직이 어떻게 컴퓨터로부터 영향을 받는지에 대한 논문을 썼다. 이때 그는 컴퓨터 업계의 전설적인 대가들과 인공지능 전문가들과 교류하게 되었으며 제록스사는 제록스 연구서에 대한 기사를 의뢰하고 AT&T는 전략상 자문을 의뢰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이후 발전하는 통신기술에 대한 연구로 이어졌으며 정부의 AT&T 해체 명령을 이보다 십여년 전에 예측하기도 했다. 1960년대 중반에 그는 <미래의 충격>을 저술하기 시작했으며 이 책으로 인해 그의 작가이자 강사로서의 경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96년에는 톰 존슨과 함께 토플러 어소시에이츠를 설립하였으며 이 회사를 통해 그가 가진 아이디어들을 실현화하는 활동을 벌였다. 대한민국, 맥시코, 싱가폴, 오스트레일리아, 미국의 정부들과 비정부민간단체, 일반기업들을 대상으로 컨설팅 프로젝트를 수행해 오고 있다. 그는 그의 아내이자 공동저자인 하이디 토플러와 함께 활동하며 그들은 현재 미국의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즈지에 따르면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래학자"로 불리고 있다.

29.  피터 드러커(Peter Ferdinand Drucker, 1909년 11월 19일 ~ 2005년 11월 11일)는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미국인이며, 작가이자 경영학자였으며 스스로는 “사회생태학자(social ecologist)”라고 불렀다. 그의 저서들은 학문적으로나 대중적으로 널리 읽혔는데 주로 어떻게 인간이 사업과 정부기관과 비영리단체를 통하여 조직화되는가에 대한 탐구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의 저작들은 20세기 후반의 많은 변화들을 예측하였는데, 이를테면 민영화와 분권화, 일본 경제의 발전, 사업에서의 판촉(marketing)의 중요성, 정보화 사회의 발현과 평생 교육의 필요성들에 대해 역설하였다. 1959년에 그는 지식 노동자라는 개념을 고안하였는데 만년의 그는 다음 세대 경영에서의 지식 노동의 생산성에 대해 고찰하였다.

30.  워런 에드워드 버핏(Warren Edward Buffett, 1930년 8월 30일 ~ )은 미국의 기업인이자 투자가이다. 뛰어난 투자실력과 기부활동으로 인해 흔히 '오마하의 현인' 이라고 불린다. 2010년 현재, 포브스 지는 버핏 회장을 세계에서 3번째 부자로 선정하였다.

31.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 KBE, 1926년 3월 6일 ~ )은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경제 관료이다. 1987년부터 2006년까지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그의 회사를 통해 연설, 컨설팅 활동을 하고 있다. 2002년 명예 KBE 작위(Honorary KBE)를 받았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처음 이사회 의장으로 발탁된 그린스펀은 이후 조지 H.W. 부시,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의해 연임되었다. 그의 자리는 2006년 1월 31일, 벤 버냉키에게 넘어갔다. 그가 의장을 역임하는 동안 발생했던 검은 월요일 주식시장 붕괴와, 닷컴 버블 붕괴에 대한 그의 대처는 크게 칭송받는다. 하지만 2001년 이후 은퇴까지의 행보는 지나치게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정책을 지지해 결국 부동산 버블로 이끌었다는 이유로 비판받는다.

32.  벤 샬롬 버냉키(Ben Shalom Bernanke)는 미국 조지아주 출신의 경제학자로서,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의 뒤를 이어 2006년 2월부터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eral Reserve Bank) 의장직을 맡고 있다.

왜 작금의 기독교에서는 이러한 인물들이 나오지 않는 것인지 생각해 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음식을 가려 먹지 않아서 피가 맑지 못하고 식품 첨가물이나 잘 못된 식습관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지게 되었으며 욕망이 지나칠 정도로 세속적이며 추구하는 관심이 물질적이고 향락이면 기독교인들의 영성이 신비주의에 빠져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가정교육이 없고 교회교육이 바닥을 치고 있는가하면 학교에서도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으며 기독교인들의 세계관이나 역사관이 정립이 되지 않아서 결국은 가치관이 잘 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최고관… 2011-10-07 (금) 11:58
이 글은 에스라 하우스 노우호목사님 칼럼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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